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 놀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 상상
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길바닥 위에 그어진 선을 밟고 혼자만의 놀이를 시작합니다.
선 밖으로 떨어지면 큰일이 벌어진다는 걸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괴물이 끝도 보이지 않는 구멍에서 떨어지는 아이들을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는 조심하며 선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걷습니다.
지루할 땐 빨리 달리기도 하고 선을 따라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부지런히 걷고 달립니다.
선은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다고 해도 문제없습니다. 분필을 꺼내 가고 싶은 곳으로 선을 그려 따라가면 되니까요. 그렇게 아이는 다리 위로 올라가 선을 그리고 상상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가고 싶은 곳은 모두 갈 수 있답니다. 그렇게 종일 선 따라 걷다가 해가 저물면 남긴 선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의 선 따라 걷기 놀이는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엔 공책을 펴고 공책 위에 선을 그려 다시 상상속에서 다양한 선을 그리고 따라 걷습니다. 긴선, 짧은 선, 둥글고 부드러운 선, 뾰족하고 날카로운 점선, 뱅글뱅글 돌고 도는 선... 그러다가 아이는 깜빡 잠이 들고 꿈속을 걷다가 그만 실수로 선 밖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무서운 괴물이 사는 끝도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몹시 두려웠지요. 떨어지는 동안 무서웠지만, 곧 무서운 구멍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선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하는 선 따라 걷기 놀이만큼 친구들과 하는 선 안 밟기 놀이도 재밌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을 읽었을 뿐인데 미술작품 한 권 뚝딱
그림책의 여러 가지 색으로 그려진 길고, 짧고, 둥글고, 뾰족하고, 꼬여있는 선들과 그런 선들이 지나가며 만들어낸 네모, 동그라미, 세모와 같은 도형이 페이지마다 인상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색깔과 벽화나 특수 기호를 연상시키는 건물의 모습은 예술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그림작가 알랭 코르크스는 삽화를 그릴 때 여러 부분 현대 추상화의 거장 파울 클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알랭 코르크스는 파울 클레를 존경할 뿐 아니라 사색적이고 다의적인 그의 그림체가 이 이야기에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책은 화가가 거장 파울 클레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이 책의 출판사는 이야기합니다.
알랭 코르크스는 그림 작가이자 동화 작가로, 여러 박물관에서 가이드로 활동하며 미술사에 대해 강연하기도 합니다. 작품으로는 <엘리안을 기다리며>, <푸른 눈의 아쿠티>, <그림자들은 어디에?> 등이 있습니다.
작가 크리스틴 베젤은 번역가이자 아동문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대표작으로 <물이 무서운 악어>, <나는 마가리트 공주>, <내 사진 보여줄까?>, <잠자는 용을 깨우지마세요!> 등이 있습니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아도 괜찮아. 선은 네가 정하는 거야.
가끔 아이와 보도블록을 함께 걷다가 선을 따라 걷거나, 선을 밟지 않거나, 특정한 색 블록만 밟는 놀이를 합니다.
단순히 놀이로만 생각하고 했을 땐 별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 그림책 <선을 따라 걷는 아이>를 읽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절대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려 합니다. 선 밖으로 나오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있지요. 하지만 선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큰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정해 놓은 길이나 쉬운 길로 가는 것도 좋지만 그 길을 벗어난다고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 생기진 않습니다. 간혹 삐뚤어진 선, 구불구불한 선위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힘든 시간이 오기도 하겠지만, 가는 길에 더 이상 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그려 나가거나 생각을 바꿔서 선 밟지 않기를 해도 좋습니다. 혼자 해도 좋고 함께해도 좋고, 어떻게 선택을 하든지 내 자신의 몫이고 스스로의 선택인것 입니다.
어린 친구들의 그림책이지만 다소 철학적인 이 책은 함께 읽는 어른에게도 작은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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